그리스 미술 및 조각
그리스 미술은 넓은 의미로 해석해보면, 선사시대의 미케니와 크레타의 미술이 포함되며, 통상 그리스 미술이라고 할 때에는 아르카이크 시기부터 헬레니즘에 이르는 미술을 뜻한다. 그리스 미술은 선사시대에의 미케네의 미술이, 그 이후 시대인 그리스 미술과 비교해보면 미적인 감각과 미술의 양식이 상당히 다르며, 미케네의 미술이 그리스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리스 미술은 대단히 조소적이며 간소하지만, 에게해 미술은 회화적이며 공예적이어서 기념비 조각은 예외를 빼면 존재하지 않는다. 조각은 처음단계에 대부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제작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예를 들면 성지에 세워진 신들의 영웅상, 신전 본당에 있던 신상, 묘지에 놓여진 사나의 상, 신전 건축의 장식조각 등을 들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비종교적인 조각상으로는 운동경기의 승리자 상, 유명한 인물의 상 등이 있지만, 이 또한 대부분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 성지에 놓여진 것으로 종교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원시시대의 그리스 조각은 다른 원시의 민족처럼 제물 숭배시대를 거쳐 조각 보내 모양을 갖추어왔다. 옛 시대의 자료에 따르면 초기시대에 크소아논이라 불린 최초의 조각상은 나무를 재료로 하여 소박한 형태를 시도하여 성지나 신전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 양식은 기하학적 모양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목조신상은 돌을 이용한 석상으로 발전되었고 이후에 대형 조각상으로 개발되어 갔다.
기원전 십세기부터 구세기에 성립된 그리스의 폴리스는 기원전 칠세기부터 육세기에 걸쳐서 발전을 하여, 지중해 지역에 식민지 건설을 시작하였다. 동일한 시기에 오리엔트나 이집트와 교류하면서 대리석으로 기념물을 제작하는 방법을 학습아여 고대 그리스 조각은 아르카이크기에 들어서게 된다. 페르시아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지역을 장악한 아테네에서는 오세기 후반부터 이상미를 추구하는 고전기에 진입하였다. 알렉산드로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오리엔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혼합된 헬레니즘 시대에는 고전적인 감정이 높아졌고, 이러한 특징은 로마까지 승계되었다.
그리스의 건축
신전은 그리스의 건축 분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리스 건축의 특색과 아름다움이 신전에 나타나 있다. 가장 오래된 형식은 메가론이라 불리우는 미케네시대의 주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 교회당에서는 여러가지 양식이 시대에따라 외부와 내부가 서로 발전하였고, 또 내부의 장식이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초기에는 전체와 부분의 형식이 개별적이었으나, 기원전 육세기에 처음으로 엄격하고 수학적 측면으로 정확한 건축방식이 만들어졌다. 건축 구조상 그리스 신전의 가장 중용한 부분은 기둥 및 수평 부재, 주 양식은 각 부분의 비율이나 형태의 차이에 따라 이오니아식 및 코린트식으로 구분된다.
그리스 문학
그리스 문학의 특징은 기원전 칠세기경 호메로스부터 현재까지 유지된 오래된 역사라는 점이다. 28세기 가까이 긴 세월에 걸쳐서 그리스어는 계속 변화했고 그리스 문학 또한 언어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리스 문학은 시대의 변화에 의하여 단절되지 않은 하나의 연속성 있는 문학으로 대우받는다. 고대 이후에 그리스 문학은 비잔티움제국의 문학으로 그 맥락을 이었다. 이후에 오르만 튀르크가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한 후, 그리스 작품과 작가미상의 작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입으로 전달되는 문학에서 시작된 고대 그리스 문학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기록문학으로 처음 남겨진 이후 급속히 발전하였다. 기원전 육세기와 오세기인 고전시기에 집필된 작품은 이후에 그리스 문학뿐 아니라 라틴문학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근대 그리스 문학
근데 그리스 문학의 중심이 된 것은 대중의 독립투쟁을 담은 솔로모스를 비롯하여 그리스 서부의 이오니아제도 출신의 시인으로서 민요속에서 언어를 발견하여 문학용어와의 융합을 시도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에가 아닌 순정어를 제외하고 서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전파하려는 솔로모스의 노력은 고전과 유대를 중시하는 보수파의 반발에 부딪쳐서 좌절되었지만 프시하리스가 서민이 사용하는 언어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그 지위가 확고해졌다.
서정시의 기교에 뛰어나며 그리스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팔라마스, 비잔틴 문화의 흥망성쇠를 표현한 카바피스, 서구 현대시의 영향을 받아 천구백육십삼년 노벨상을 수상한 세페리스가 대표적인 시인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근대의 그리스 작가들은 지방특색을 변성하지 못하면서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해외에서 작품이 읽혀지며 유명해진 소설가는 카잔자키스 단 한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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