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독일의 예술 - 시대별 회화, 조각에 대하여

by 엘리1023 2022. 12. 25.
반응형

독일의 예술

 

독일의 회화

 

17세기부터 18세기의 독일의 회화

17세기는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긴 전쟁으로 인하여 독일의 미술은 오랜기간 성과나 발전이 없는 시기였다. 유능한 화가들은 교회나 귀족에게 작품을 요청받기 위하여 대부분 다른나라로 나갔다. 화가 셴펠트는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독일 남부지역으로 돌아왔다. 독일의 회화는 셴펠트가 이탈리아 교외에서의 생활과 추억을 기억하며 그림자와 빛이 강하게 대비되는 특이한 색채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후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변함없이 네덜란드의 루벤스나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의 기법을 접목하여 따라그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의 작품인 '마리아의 탄식' 에서와 같이 또렷한 터치로 많은 사람들을 어두운 배경에서 강조되게 돋보이도록 한 기법은 상당히 독특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도 한결같이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 이 당시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두 작가는 페스네와 데스마레가 있었다. 페스네는 파리 출신이고 데스마레는 스웨덴 출신이었다. 세계적으로 평판이 높은 화가는 독일인 중 멩스가 유일했지만 그는 로마에서 살면서 그 후에도 계속 마드리드의 궁에 공헌했다. 그러나 멩스는 화가로서뿐 아니라 이론가로서도 뛰어났으며, 독일어로 저작된 '회화에 있어서의 미와 취미에 관한 고찰'이라는 저서에서 주장한 고전주의의 관점은 독일 미술계에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 독일의 미술역사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회화보다는 천장화 및 벽화의 제작이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까지 독일 남부의 수도원, 궁전의 공간에 공상적으로 표현한 프레스코화는 다른 유럽의 나라에서 볼 수 없을 만큼 발전하였다. 독일 남부의 침머만, 아잠 등은 담대한 원근법으로 천장에 그린 회화공간을 건물 내부의 실제공간과 재치있게 연결하였고, 그림과 실제의 조각작품의 대상이 된 인물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기도 했다.

 

19세기 사실주의

19세기의 특징은 개인의 성찰이 점차 왕성해지며 대중의 생활이 존중받는 시대였다. 독일의 풍경화는 프랑스의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게 되었고, 19세기 후반기에는 사실주의를 반영한 작품이 나타났다. 멘첼은 사실주의를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이다. 멘첼은 스물다섯살에 역사화인 '프리드리히 대왕사' 라는 작품에 삽화를 그리며 이른나이에 미술계서 유명했다. 역사화에는 주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발자취를 그린 작품이 있었고, 그 중 대표작품인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이다. 또한 멘첼은 빛의 묘사에도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며 19세기 후반에는 매우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었다. 라이블 또한 사실적인 작품을 그린 화가였다. 그는 정확한 관찰과 간결한 묘사로 농민과 서민생활을 그렸고 생활모습을 강조한 사실성을 보였다.

 

신이상주의

독일의 회화는 사실주의에 의하여 새로이 발전되었으며 인상파의 도입으로 분리파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고유한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은 사실적인 묘사와 문학적으로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새로운 변화를 보였는데 이를 신이상주의라고 한다. 스위스 출신인 뵈클린은 신이상주의의 대표 화가이다. 뵈클린은 자연스러운 풍경을 그릴때에도 환상의 세계에 동화되도록 표현했다.대표작품으로는 '파도의 희롱', '죽음의 섬' 등이 있다. 

 

 

독일의 조각

17세기부터 18세기 독일의 조각

독일의 조각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로는 조각은 건축물에 속해있어 단독으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직 장식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으며 작품도 먼 곳에서 바라볼 것을 고려하여 세부를 가꾸는 것을 등한시하였다. 두번째로는 고딕시대 말기 작품과 비슷하다는 특징이다. 이는 17세기 초반의 뛰어난 조각가인 페테르의 훌륭한 작품인 '책형 군상'에서 볼 수 있다. 십자가를 품에 안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기다란 머리카락과 난해하게 표현된 의상의 무늬는 고딕시대 이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베를린 출신의 실뤼터도 훌륭한 조각가였다. 그는 인체를 표현함에 있어서 고딕적인 방식을 생각나게 하는것은 없었지만 영혼을 표현한 방식은 고전주의적인 것으로 보여졌다. 독일 남부 출신의 페르모저도 뛰어난 조각가였다. 페르모저는 오랜기간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후에 드레스덴의 궁전의 조각가가 되었다. 그가 표현한 사람들은 상상력이 넘쳤으며 강렬한 움직임 속에서 볼 수 있는 각개의 모습이 훌륭한 통일감을 이룬다. 빈 출신의 조각가 도너는 로코코에서 고전주의로 넘어오는 시기를 대표했다. 그는 탁한 광택을 가진 납을 주된 재료로 사용하여 아름다운 여성의 조각상을 제작하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