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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예술 - 문학, 희극에 대하여

by 엘리1023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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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예술 시인 에미네쿠스 초상화

 

루마니아의 문학

루마니아는 동로마 문화를 가진 라틴 국가였다. 슬라브족의 꾸준한 유입으로 나라가 사라지고 재건되었다. 십 구세기에 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 러시아가 루마니아를 통치했습니다. 제 육차 오스만과 러시아 전쟁에서 오스만이 참패하면서 루마니아의 독립이 나타났다. 십 팔세기 후기부터 러시아의 슬라브 문화에 영향받은 루마니아 민족문화는 오스만 문화를 거부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학계에서 이 나라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첫 번째 작가는 십 구세기 중반의 민족시인 알렉산드리아이다. 이 시기에 루마니아는 근대 국가로 간신히 통일된 상태였다. 이어 천팔백육십사년년에는 유명한 문학단체 청년단의 결성, 학술지 '문학담론'의 발간, 천팔백육십육년 학사학교 설립 등 루마니아 역사에 기록적인 일들이 연거푸 생겨났다. 청년단은 교육자이자 정치인인 마요레스크가 주도한 민족문학 발양을 위해 설립되었다. 청년단에는 루마니아 최대의 시인인 에미네쿠스의 '초저녁의 비너스', 산문가 클리아의 자서전 '소년시절의 추억' 등을 비롯해 우수한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루마니아 최대의 극작가인 카라지알레는 이 시기에도 상연된 '잃어버린 편지'와 '폭풍의 밤'과 같은 사회 풍자극으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금세기에는 시인 요시프, 고시부크, 블라후차, 평론가 요르가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족문학운동이 발달되었다. 하지만 제 일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 문학은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로맹 롤랑이 극찬한 이스토라시는 '발칸의 고리키'로 불리며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 약간 성질이 다르다. 고국에서 금세기 최고의 작가로 지목되는 작가는 사도 비누로, '미토리아코코르'를 비롯한 많은 장편 농민 소설을 써왔다. 소설 '25시'로 세계적인 유명 작가 게오르기규는 막상 루마니아 본국에서는 무시받고 있다.

 

루마니아의 희곡

작품명:잃어버린 편지

'잃어버린 편지'는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의 작품으로 천팔백팔십사년에 발표한 코미디이다. 천팔백팔십사년 십일월 십삼일 국립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이후 매년 공연되고 있는 루마니아 최고의 코미디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편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코미디는 결국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징벌하면서 끝난다. 일관되게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결국 손해를 보거나 잘못을 뉘우치고, 선한 사람은 처음에는 온갖 고난을 겪다가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카라지알레의 유머극에서는 이런 상투적인 말 대신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묘한 반전이 있다. 그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극이 끝날 때까지 파렴치하게 행동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끝까지 간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보다 더 나쁜 것이 갑자기 나타나고, 나쁜 사람은 더 나쁜 수단을 통해 자신이 의도한 것을 얻는다. 이것이 인정하기 싫은 우리 사회의 절망적인 모습이다. 정의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사회에서 선악은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설화일 뿐이다. 카라지알레는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기 위해 정의가 득세하는 곳인 것처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억지로 꾸미지 않았으며, 사회가 협박과 음모, 위선과 아첨, 부패와 불신이 만연한 곳임을 인정하였다. 수단이 없는 사람이 인생을 마음껏 사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얄팍한 성공은 자기만족이나 착각일 뿐 타인을 조롱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카라지알레의 코미디는 사회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표현했다. 또한 사회에서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가 작품에서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어떤 부정적인 특성들이 과장에 가깝게 묘사되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카라지알레는 자신을 합리화 하며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소롭게 보이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부정적인 사회를 보여주었고, 이를 고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것에 제압된 세상이 우리 사회의 정한 현실임을 드러내고, 우리의 포부와 출세에 대한 열망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면을 쓰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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