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예술 중 미국의 미술은 국적이 미국인인 예술가에 만들어진 시각예술을 의미한다. 시대별로 구분하여 미국의 회화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20세기의 회화
1901년 1월 1일 ~ 2000년 12월 31일
천구백십삼년 이월에 뉴욕의 어느 군부대의 창고에서 유럽의 현대미술을 안내하는 대규모의 박람회가 열리게 되었다. 고흐와 세잔에서 표현주의까지 미치는 현대미술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공개된 새로운 박람회였다. 박람회장은 비웃음과 노여움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이 당시 유럽에 자리잡은 오래된 방식에 태평하게 젖어 있던 미국 미술계에 가져다준 충격은 매우 컸다. 특히 퀴비슴이 전시된 곳은 '공포의 방'이라 불리게 되어 마르셀 뒤샹의 작품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umber 2' 등은 이 작품을 이해하려는 사람도 없었기 떄문에 소문들의 일종이 되었다. 그러나 뉴욕에서 약 팔만명, 보스턴 및 시카고에서 순차적으로 열린 박람회에서 약 십팔만명의 관객이 모인 이 박람회의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천구백육심년대 초에 팝아트가 뉴욕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그 이름은 파퓰러 아트를 간략히 줄인 의미로서 천구백오십년대의 영국에서 로렌스 아로웨이가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미국의 팝아트는 도시의 정보문화가 만드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여 미술을 대중적인 영역으로 확대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는 올덴버그,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이 있다. 더구나 천구백육심년 프랑스의 평론가인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해 응집된 신레알리즘도 도시적인 현실에 어울리는 팝아트를 진척시켰다. 천구백오십이년 미국의 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가 액션 페인팅의 이름을 지은 이후 미국의 대표적 표현양식이 되었다. 액션 페인팅의 대표작가로는 프란츠클라인, 잭슨폴록, 빌럼데쿠닝 등이 있다. 원래 제이 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에 망명도주한 쉬르레알리스트의 영향 아래에서 쉬르레알리슴이 개발한 오토마티슴의 기법을 더욱 빈틈없이 적용한 기법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쉬르의 이미지 이념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천구백육심년 전후에 알려진 네오 다다이즘은 그린다고 하는 행위를 최고로 삼은 액션 페인팅에 대하여, 현실적인 취향이나 오브제를 작품에 받아들인 부분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로버트 라운센버그와 재스퍼 존스은 액션 페인팅의 대표 화가로 알려졌다.
19세기의 회화
1801년 1월 1일 ~ 1900년 12월 31일
천팔백오십오년에 프랑스 파리에 나타난 휘슬러는 미국 최고의 화가라고 불려졌다. 휘슬러가 젊었을 때는 군대를 그리워했으나 자유를 바라는 성향으로 회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글레이르의 제자 되어 드가를 알고, 마네의 이론을 귀담아 들었다. 그는 당시의 영국 작품의 주제를 남달리 문제삼았으며, 세부분의 묘사에 구한됨을 반대하여 전체의 분위기를 중시하며 그렸다. 화가인 호머는 미국의 자연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고, 해양 화가로서의 자리를 견고히 하였다. 그리고 라이더는 실질적인 자연보다 자연에 환상을 추가하여 '청백색 말을 탄 사신'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풍경에 기이한 묘사를 하다. 또 인상파 화가 중에서 카사트는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동하여 프랑스에서 생활했던 화가이다. 성격이 까다로운 드가와 친구가 되었으며 여성스러운 세련미로 새로운 매력을 펼쳤다. 식민지로서 개간된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에 건국과 함께 광대한 국운으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 팽창한 개척사업으로 도일하던 시대였으며, 회화의 감상에는 오랜기간 쌓아올린 풍습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 그러나 회화에서는 십팔세기 말부터 십구세기 동안에 웨스트가 등장했다. 웨스트는 영국에서 명예를 얻고 미국으로 귀국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의 런던으로 와서 회화를 연구하는 미국의 젊은 화가들을 지도하며 미국의 회화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만큼 영국의 회화는 미국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스튜어트도 런던으로 넘어간 후 깊은 고뇌를 얻었지만 이 후에 웨스트의 다정한 지원 받았다. 스튜어트는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알려졌고 유명한 작품은 '워싱턴의 초상'이다. 이를 이어받아 런던에서 웨스트의 제자로서 학습한 피어도 수많은 명사의 초상화를 그렸고, '워싱턴의 상'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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