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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예술 - 문학, 미술, 클림트에 대하여

by 엘리1023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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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예술 클림트 작품

오스트리아의 문학

민네장

민네장은 십이세기부터 십사세기에 독일에서 유행했던 서정시와 사랑의 노래 장르이다. 사랑을 뜻하는 '민네', 노래를 뜻하는 '장' 이라는 의미이다. 민네장을 만들고 부르는 이를 민네쟁어, 민네장 곡을 민네리트라고 한다. 민네쟁어들은 대부분 하층민이었지만 귀족적인 민네쟁어가 없지는 않았다. 민네장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최고로 큰 변화를 보인 중세 독일 문학장르이다. 민네장을 몇가지 방법으로만 분류하면 다음과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남성, 여성, 응답, 대화, 십자군, 전령, 직접구애, 한숨 또는 민요, 단체노래, 자연주의, 리이히 등이 포함된다. 위의 서술을 바탕으로 중세 독일 문학인 민네장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장르는 상당히 짧은 기간에 많은 내외부의 변화와 이를 통해 다양한 형식으로 번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네는 건설적인 사랑으로서 개인적인 열정을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표현했다. 반면 사회적 한계를 받아들여 규범에 부합하는 법을 보여줬다.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었는데, 남자는 기사, 여자는 귀부인이었다. 기사는 귀부인에게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은혜만을 바라고 사랑을 섬긴다. 체념하지만 끊임없이 흠모하는 격앙된 정신은 충족되지 못한 그리움을 통해 지속적이고 영적인 인상으로 이어진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애정이 세속적인 여인에게 전해졌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문학이 발전했다. 사람들은 이 긴장 속에서 삶을 즐겼다. 귀부인이 차지하는 존경은 여성적인 취미, 선호, 귀족에 대한 배려로 이어졌다. 

민네의 종류

중용민네와 저급민네가 있다. 일부는 귀족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불만을 표시하여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신분에 차이를 두었다. 이와 동시에 귀족적 신분보다는 비천한 신분의 여성들에게 사랑을 바친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를 '저급민네'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음에는 성욕만을 갈구하는 노래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중용민네'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왔다. 결국 중용민네는 귀부인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너무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욕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수준높은 고급민네의 민네장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정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노래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여성을 사랑의 동반자로 보는것에 그치지 않고 남성이 우러러봐야 할 지배적인 계층으로 표현한 노래들이 있는데, 이러한 특별한 형태의 민네장을 '고급민네'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고급민네는 주로 남성보다 높은 지위의 여성, 즉 고귀한 지위의 여성에게 불려진 노래이다. 이 고급민네는 특히 귀족들이 남성들에게 원했던 행동과 가치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비록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더라도 당시 귀족들이 추구했던 방식과 존엄성,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덕목을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미술

빈 분리파

오스트리아의 미술에서 빈 분리파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형성된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천팔백구십칠년 사월 삼일에 빈 전시관 퀸틀러하우스의 보수적인 성향에 불만을 품은 예술가들이 여기서 탈퇴하면서 구성되었다. 그림, 조각, 건축, 공예를 포함한 몇몇 예술가들이 빈 분리파에 참여했고 그들의 예술가들은 구스타프 클림트를 포함했다. 천팔백구십팔년에 베를린의 분리파 및 뮌헨의 분리파에 속한 예술가들과 함께 분리파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나 빈 분리파의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치는 빈 분리파 전시관을 건립했는데, 전시관 입구에 '시대의 예술, 예술의 자유'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빈 분리파 단체가 공예품 전시회를 개최한 것도 종합예술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천구백삼년 요제프 호프만은 빈 공방을 건설했지만 순수예술을 추구하던 회원들은 빈 분리파에 불만을 품게 된다. 천구백오년에는 구스타프 클림트 등이 탈퇴하면서 빈 분리파의 세력은 사라졌다.   

구스타프 클림트

빈 분리파 운동의 주요 멤버이며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이다. 그는 천팔백구십칠년에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반 학술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천구백육년에 오스트리아 예술가 연맹을 구성하고 전시활동을 시작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빈 아르누보 운동에서 가장 저명한 예술가들 중 한명이었다. 한국에서는 예술의 전당의 한가람미술관에서 주디트, 베토벤 프리즈 등 이백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클림트는 벽화, 스케치, 그림을 남겼다. 작품의 주된 소재는 여성의 신체이며, 그의 작품은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낸 에로티시즘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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