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술은 고대 도예, 토기, 우키요에, 조각, 오리가미, 서예, 수묵화 등 넓은 범위의 예술 양식과 매체를 전체적으로 포함한다. 기원전 10,000년에 일본에 사람이 거주를 시작한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에도 시대
마루야마시조파는 문인화가 한창인 시대에 다른 한편에서 객관적 사실주의를 특히 주장한 일파였다. 마루야마 오쿄는 에도시대의 마루야마시조파의 대표 작가라 할 수 있다. 마루야마 오쿄는 네덜란드나 중국에서 수입한 안경화에 관심을 가지고 음영법이나 원근법의 기술을 습득하고 회화에서 사생의 필요를 동감하였다. 그러나 장식적인 표현을 전혀 무시한것은 아니고 사생주의를 원칙으로 삼으면서 적당히 장식성을 추가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마루야마파와 병립하여 사생주의 회화를 시작한 것이 교토시조에 살았던 마쓰무라 고슌을 중심으로 한 시조파였다. 그 시조파의 대표적인 화가는 마쓰무라 케이분 등이 있다. 또한 에도시대의 도사파는 후지와라 시대부터 야마토에의 유파로 알려졌고 무로마치 시대가 되자 가노파에 밀려 존재가 희미하였으나, 십칠세기에 도사 미쓰오키가 조정의 화가로 활약하면서 도사파의 발전에 힘썼다. 그의 작품으로는 '이쓰쿠시마 마쓰시마 도병풍' 등이 있고, 독창성이 부족한 표면적인 사실에 빠지기 쉬운 새로운 양식을 가지면서 그 화풍은 점차 피상적인 사실주의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
가마쿠라시대의 후기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 원나라와 송나라의 그림이 일본에 수입되었다. 이 영향으로 일본에도 수묵으로 그린 수묵화가 매우 유행하게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 회화 역사의 중심은 원나라와 송나라의 그림을 모범으로 하는 한화가들의 수묵산수화에 의하 점거되었다고 해도 무관하다. 소탄, 가노 마사노부, 슈분 등은 수묵산수화에 중심을 두고 그 중에서도 남송원체화에서 배웠으나, 아미파와 같이 옥간이나 목계의 그림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본의 수묵산수화의 큰 인물인 셋슈는 송나라와 원나라 뿐 아니라 명나라의 그림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셋슈도 마찬가지로 장식적인 화조화를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운고쿠파 뿐 아니라 가노파·하세가와파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노파는 수묵화의 장식적인 용도로의 이용에 있어 충분히 수묵화의 특성을 유지하며, 그 위에 장식효과도 가미해서 새로운 장식으로서의 회화를 만들어냈다. 단순한 화면을 가진 수묵화와 장식성은 반대적으로 보이지만, 가노파의 조상으로 알려진 가노 마사노부의 아들인 모토노부는 수묵화의 묘법을 능률적으로 사용하면 충분한 장식효과를 올리는 데 성과를 올렸다.
아스카 시대
아스카시대의 호류지의 금당벽화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이었는데 천구백사십구년에년 화재로 인하여 대부분을 소멸되었다. 그러나 간신이 남겨진 작품인 원도나 비천에 충실한 모사에 의하여 옛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벽화의 주제는 사면에 약사, 석가, 미륵, 아미타 등 4여래의 정토도를 그렸다고 하는 의견이 영향력있다. 보살이나 여래를 그린 탄력있는 확고한 선은 '철선묘'라는 중국의 기법으로, 의복에는 다각적인 인상을 주기 위하여 선염이 되어 있다. 이러한 기법은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와 유사하여 결과적으로 중국과 한국 전통을 주체로하여 아시아나 인도 여러 지역의 회화 기술을 합친 것이라고 보여진다. 호류지와 관련한 회화 작품 중 칠세기에서 팔세기 초의 것이라고 예상되는 '쇼토쿠 태자상'이 있다. 양쪽에 두 왕좌를 세운 모습은 불화나 불상조각의 삼존형식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중국 초상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나라 시대
나라시대의 불교 회화는 헤이안 시대에 구카이나 사이 등이 당나라에서 밀교화를 가져왔는데 이후부터 만다라를 많이 그렸다. 현존하는 최고의 만다라는 진고지의 것으로 팔백이십년 즈음의 작품이다. 후지와라의 불교회화의 대표작으로는 곤고부지에 있는 '불열반도'가 있다. 석가모니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했을 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십이세기부터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는 교오고코쿠지의 '12천상'이다. 노란색·파란색·초록색 등의 부드러운 색조로 색칠하여 정치한 가늘고 길게 자른 금박과 은박을 무늬를 그리듯이 작품 위에 표현하는 기법과 함께 헤이안시대 후기 불교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연이어서 부처와 신은 본래 일체로 여기며, 대중을 구제하기 위하여 부처가 일본의 신으로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본지수적설에 의해 그려진 수적화가 있다. 대표작 중에서는 가스가샤지의 만다라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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