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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예술 - 문화, 문학에 대하여

by 엘리1023 2022.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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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예술

 

포르투갈의 문화

투우

 투우는 소를 상대로 싸우는 포르투갈, 스페인, 라틴아메리카의 고전적인 놀이 중 하나이다. 투우의 유래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들이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투우 경기는 소 또는 경기를 하는 사람이 결국 사망하는 걸로 끝이 난다. 보통의 경우에는 소가 죽지만 사고로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며 스트레스를 이겨냈다고 한다. 한때 스페인의 북동부지역과 프랑스 남부지역에서는 동물을 학대한다는 이유로 금지된 적이 있었지만, 이것이 위헌적인 것으로 판단되어 현재는 투우 경기가 계속되고 있다. 동물학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문화를 지키길 원하는 사람들과 어쩔수 없이 대치하게 된다. 

루소트로피칼리즘

 루소트로피칼리즘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의 제국주의가 독틍한 특징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브라질의 사회학자 빌베르투 프레이르에 의해 처음으로 나왔다. 그는 포르투갈이 다른 유럽국가보다 월등한 식민지배를 했다고 주장했다. 포르투갈은 이십세기 초기까지 식민지를 지배했던 국가였으며, 오백년이상 포르투갈이 통치한 식민지도 있었다. 프레이르는 이러한 포르투갈의 식민주의 사상에 관한 내용을 집필하면서 루소트로피칼리즘의 정의를 설정하였다. 처음으로 루소트로피칼리즘을 주장한 프레이르의 저서가 출판된 이후 여러 논평이 있었다. 이에 프레이르는 미국이 모범 민주국가라고 하지만 이와는 모순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인종차별 및 노예제도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르투갈의 언어

포르투갈어는 전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서 약 이억육천만명 이상이 사용한다. 포르투갈과 브라질 뿐만 아니라 앙골라, 마카오, 카보베르데, 동티모르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인 다드라 나가르하벨리, 다만디우 등에서도 사용한다. 포르투갈어는 아프리카연합, 유럽연합과 올림픽협회 등의 공식 언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포르투갈 언어의 음운형식은 프랑스 언어의 그것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포르투갈어와 어휘 및 문법이 매우 흡사하여 발음에서 차이가 나지만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이해함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포르투갈의 요리

포르투갈의 요리는 풍미가 좋아 지중해 음식의 대표로 지목된다.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며, 주로 사용하는 재료로 샤프란, 계피, 바닐라콩,마늘, 파슬리 등이 있다. 무어인 및 아랍인을 반영하듯 스페인 요리와 함께 남부지역에서 포르투갈 요리의 특성이 더욱 돋보인다. 포르투갈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는 향신료와 올리브유이다. 또한 요리의 방법에는 야채가 넉넉히 사용되는데 주로 양파, 토마토, 배추 등이 쓰인다. 페이조아다는 콩을 재료로 하여 만든 대표적인 요리이며, 주 요리에는 사이드 메뉴로 샐러드가 함께 서빙된다. 포르투갈은 지리상 두개의 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해산물 요리의 발달이 상당했다. 생선을 먹는 방법이 다양한데, 찜을 하거나 그릴에 굽는다. 찜으로 요리를 할 경우에는 올리브유를 함께 먹는다고 한다. 또한 치즈의 종류가 다양한데, 양이나 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를 흔하게 사용한다. 이 두가지 치즈의 특징은 맛과 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전통요리에는 치즈를 주된 재료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식전 또는 식후에 에피타이저 또는 디저트로 먹기도 한다. 

 

포르투갈의 시대별 문학 

 포르투칼 문학의 고전기인 16세기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영향을 받아 문학적으로 황금기였다. 이 시기에는 포르투갈이 외국으로 뻗어나갔기 때문에 여행기 및 탐험기 등이 주로 집필되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종교 분야에서는 안토니우 비에이라, 희곡 분야에서는 멜루가 특별히 눈에 띈 작가였다. 시 분야에서 보카즈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뛰어난 작가로는 에르쿨라누, 가헤트, 카스틸류가 있었다. 이 외에 소설분야를 대표하는 작가는 줄리우 디니스와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가 있었다. 사실주의 시대는 천팔백육십오년대 이후에 시작되었으며 켄탈과 케이로스가 이 시대의 중심 작가였다. 근대주의로 들어서는 이십세기의 대표 작가로는 소설 분야의 아킬리누 히베이루, 시 분야의 페르난두 페소아, 신사실주의의 페레이라 드 카스트루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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