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문학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을 일컫는 서슬라브의 나라 중 폴란드는 중세시대 이후에 훌륭한 독립적 문학을 가지고 있다. 폴란드 문학의 독립성을 이해하려면 이 나라의 고초와 명예가 혼재한 역사에 깊이 공감해야 한다. 예를 들기 위하여 십구세기를 연구해 보자. 서구에서는 몇몇의 근대 국가에서는 국민문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였지만 폴란드에서는 나라가 망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이 반영되어 폴란드의 국민문학의 주제는 변함없이 국가의 독립에 관련한 것이었다. 도덕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같은 주제도 국가의 독립과 연결된 형식으로 표현되었고, 개인의 슬픔과 고민과 같은 주제 또한 국가의 독립과 연관되었다. 폴란드 문학은 고전적으로 산문보다는 시가 발전했고, 시의 부문에서는 세계 문학 중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예술적 수준에 이르렀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16세기 후반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로서 폴란드 문화의 황금기였다. 이 시대에는 점점 나타나기 시작한 귀족계급 중 슐라흐타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획득하여 르네상스의 기두가 되었으며 종교개혁 운동의 선구자였다. 특히나 종교개혁 운동은 폴란드어를 민족의 언어로 이루는 운동이기도 했다. 종교개혁 운동으로 인하여 라틴어 대신 폴란드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어로 집필한 대표적인 작가는 미코와이 레이이다. 그의 작품 중 '귀족·대관(代官)·사제 3자의 짤막한 토론'은 폴란드 문학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산문에 의한 철학적이고 종교적 이었다. 그가 집필한 산문 '성실한 인간의 일생'을 보면 알 수 있듯,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쓴 것이 문학적 언어로서 폴란드어가 발달하게 되었다. 폴란드 르네상스의 인도자는 뛰어난 시인이었던 얀 코하노프스키이다. 그는 인문학적으로 지식이 높아 서양 고전의 시 정서와 폴란드 민족의 전래를 주제로 하여 본인의 시 속에 표현하며 시의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폴란드 최초의 비극작품인 '그리스 사절의 사퇴',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 우르술라를 애상하며 지은 '만가' 등이 얀 코하노프스키의 대표 작품이다. 예수회 신부였던 피오트르 스카르가는 종교개혁에 반대하며 많은 종교적 작품을 집필하였다. '성자열전'은 문학적 가치가 높고, '의회 앞에서의 설교'라는 작품은 '설교'의 방식으로 윤리적 및 정치적 설명한 수준 높은 산문으로 평가된다.
17세기 바로크시대
17세기는 이웃한 나라인 체코에서의 30년 전쟁을 치루며 프로테스탄티즘이 물러나고 가톨릭주의가 승리했다. 폴란드 왕국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중엽에 중앙 집권체제가 무너지고 귀족에 의한 지방 분권의 모습이 나타나며 국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17세기 초에는 발전의 기미가 있던 시민 계급이 17세기 중엽에는 쇠락하여 문화는 다시 귀족에게로 넘어갔다. 점차 몰락해가는 시기의 폴란드 문학이 바로크 시대라고 한다. 문학은 지방의 특징을 반영한 주제와 표현방식이 있었으며, 문학의 장르도 다양했다. 새로운 문학의 장르로서 역사적 서사시가 선호되었다.
17세기 말 계몽주의
17세기 말에는 폴란드 귀족들이 왕위를 계승하고자 쟁탈전을 벌이며 국가 내부적인 분열이 있었다. 이 때 폴란드와 이웃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3개국은 이 분열을 이용하여 내정 간섭을 시작했다. 18세기 말, 폴란드는 결국 이 3개국에 의하여 총 3회에 걸친 분할로 인하여 몰락했다. 18세기 후기는 폴란드 문화의 번영기를 누리게 되는데, 계몽 운동이 국내에 퍼지고 합리적인 사상과 애국적인 열정에 의하여 국가의 재건과 근대화를 위한 노력에 전력하였다. 문학분야에서는 소설이나 희극이 집필되었으며 풍자의 장르가 성행했다.
낭만주의
폴란드는 천칠백구십오년부터 천구백십팔년까지 오랜 기간동안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3개국에 의하여 분할 통치되는 참담한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폴란드 문학이 성숙된 시기였다. 국민의 염원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로 낭만주의가 등장했다.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은 천팔백삼십년부터 천팔백삼십일년에 일어난 혁명운동이 진압당하자 서유럽의 자유주의 국가로 망명하게 되었고, 낭만주의 문학은 망명하여 살게된 곳에서 스워바츠키,미츠키에비치 등의 시인에 의해 예술적 절정에 이르렀다.
댓글